회화 전북은행미술관(JB문화공간) 개관전 - 가나아트문화재단과 함께하는 근대미술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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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14회
작성일 26-02-11 13:45
| 장르 | 회화 |
|---|---|
| 전시명 | 전북은행미술관(JB문화공간) 개관전 - 가나아트문화재단과 함께하는 근대미술 특별전 |
| 전시기간 | 현재전시 2026-02-04 ~ 2026-05-10 |
| 작가명 |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오지호, 유영국, 도상봉, 권옥연, 이대원, 박영선 |
| 초대일시 | 없음 |
| 전시장소 | JB문화공간 - 전북은행미술관 |
| 전시장주소 | 전북 군산시 대학로 268 |
| 관람시간 | 11:00 ~ 18:00 (매주 월요일, 2월17일, 2월18일 휴관) |
〈환기의 산, 수근의 길 – 우리가 사랑한 근대의 풍경들〉
우리가 사랑한 풍경은 오늘을 비추는 어제의 빛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는 무엇을 ‘풍경’이라고 느끼고 기억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북은행미술관 개관전은 군산이라는 근대 도시와 함께하며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군산은 1899년 개항 이후 1905년 축항 공사를 거치며 항만이 형성되고, 1912년 군산선 개통과 1920년대 산업·물류 확장 속에서 빠르게 도시의 윤곽을 바꾸며 근대의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그 변화의 흔적은 골목과 건물, 길목마다 오래 남아 있으며, 지금도 도시의 표정 곳곳에서 조용히 되살아난다. 격동의 근대를 지나온 풍경을 따라가며,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사이에 놓인 의미를 다시 묻고자 한다. 화면 위에 겹쳐진 산과 길, 빛과 골목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기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산은 늘 우리 안의 중심을 붙잡아 주었고, 길은 그 위를 지나온 삶이 스며들어 남은 기억의 자국으로 남는다. 그래서 풍경은 단지 자연의 겉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변화 앞에서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리움과 다짐 같은 것들을 조용히 새겨 두는 일이다. 익숙하던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고, 도시의 표정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시기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바로 그 질문이 그림 속 풍경을 단지 ‘배경’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각이 머무는 자리로 바꾸어 놓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근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근대미술은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낯선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풍경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자연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계를 받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화가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본 세계, 지키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을 담았다. 이에 근대미술의 풍경은 화려한 장면이기보다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표정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산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길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빛 한 줄기와 골목의 공기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북은행미술관에서 〈환기의 산, 수근의 길 – 우리가 사랑한 근대의 풍경들〉을 마주하는 일은 한 시대의 미술을 단지 ‘전시’하는 것을 넘어 도시가 품어온 시간과 감각을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 작업이 된다. 풍경이 자연의 재현을 넘어 시대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되듯 이 전시는 군산이라는 장소 위에 예술이 남긴 풍경을 포개어 놓는다.
이번 전시에 함께하는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오지호, 유영국, 도상봉, 권옥연, 이대원, 박영선의 아홉 작가는 ‘근대의 풍경’을 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름들이다. 누군가는 산을 가장 먼 곳의 중심으로 세웠고, 누군가는 길과 골목에서 삶의 체온을 길어 올렸으며 또 누군가는 빛과 색, 구조와 리듬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감각을 붙잡았다.
이때 김환기의 〈산〉(1955-1956)은 근대미술에서 ‘산’이 어떻게 시대의 감각을 붙들어 두는 중심이 되었는지를 가장 응축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김환기의 산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형태를 간추리고 리듬과 색의 질서를 세워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축을 화면에 세운다. 산의 덩어리는 단단히 고정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변화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선이 스스로를 재정렬하는 고요한 과정이 스며든다. 그래서 〈산〉은 먼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근대의 시간 속에서 ‘기준점’이 필요했던 마음의 정신적 좌표로 기능한다. 그리고 유영국은 이 중심을 밀도 높은 색면과 기하학적 질서로 다시 세우며, 시대의 감각을 ‘구조’로 견고하게 붙잡는 또 하나의 회화적 언어를 제시한다.
반면 박수근의 〈소금장수〉(1956)는 산의 원경이 아니라 길과 장터, 골목의 생활이며, 그곳에서 근대의 시간은 생존으로 드러난다. 소금은 하루를 이어주는 최소한의 삶의 경제였고, 인물의 잠깐 멈춘 몸짓은 전후 도시가 품은 피로와 버팀을 고스란히 남긴다. 거칠게 쌓인 질감과 절제된 색조는 먼지와 체온, 침묵 같은 감각을 화면에 새겨 넣으며 도시의 기억을 촉각적으로 환기한다. 여기에 오지호의 〈설경〉은 박수근이 길 위에서 포착한 삶의 기운을 다른 감각으로 이어받아, 일상의 감각이 빛과 공기의 떨림으로도 새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김환기의 산이 시대를 지탱하는 중심이라면, 박수근의 길은 그 중심을 현실에서 버텨낸 사람들의 시간이며, 오지호가 붙잡은 빛은 그 사이를 투명하게 잇는다. 또한 유영국이 세운 구조의 질서는 이 균형을 화면 속에서 더욱 단단히 지탱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장욱진의 세계가 놓인다.
장욱진의 〈무제〉(1958)는 산과 길이 만들어내는 무게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들어 올리며 근대의 풍경을 다시 정의한다. 그는 사건을 묘사하기보다 집과 나무 같은 최소한의 기호로 삶의 구조를 재배치하며, 근대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일상의 원형을 보여준다. 더 시간이 흐른 뒤의 〈새〉(1988)는 그 질서가 풍경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삶의 바깥을 향해 열리는 순간을 암시한다. 떠남과 이동을 품은 새는 동시에 돌아올 수 있는 방향감각을 지닌 존재이며, 장욱진의 화면에서 그것은 ‘지금 여기’의 삶이 어떤 기억을 등에 지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김환기의 산이 중심을 세우고 박수근의 길이 체온을 기록한다면, 장욱진의 세계는 그 사이를 잇는 단순함의 윤리와 작은 존재들의 자유로 근대 풍경의 의미를 더욱 깊게 확장한다.
이번 전시에 담긴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를 통과한다. 체험과 사유 사이를 오가며, 근대미술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한층 깊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들이 남긴 풍경은 ‘자연을 아름답게 그린 결과’가 아니라 격변 속에서도 끝내 붙잡고자 했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 산은 멀리 있는 풍경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자리한 중심이고, 지나간 시대의 표정이면서도 오늘의 감각을 다시 세우는 기준점이다. 전시 속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가 남긴 시간의 흔적을 다시 읽는 일이자 우리가 어디에 서 있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전북은행미술관은 이번 개관전을 출발점으로, 근대미술을 과거의 양식으로만 보관하지 않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내고자 한다. 격변의 시간을 통과한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되, 이를 군산과 전북의 도시 기억 그리고 삶의 풍경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며 지역의 시간과 예술의 시선이 만나는 장을 넓혀갈 것이다. 나아가 흩어진 근대의 흔적들을 차곡차곡 모아 지역의 근대를 새롭게 읽어내는 미술관이 되고자 한다. 예술이 남긴 풍경과 도시가 간직한 풍경을 한 지점에 포개어 놓음으로써 근대를 과거로 고정하지 않고 오늘의 질문으로 되살린다. 군산이라는 장소가 품은 시간성 위에서 근대미술은 다시 한 번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을 현재형으로 새롭게 묻는다. 우리가 사랑해 온 풍경이 어떻게 기억이 되는지 마침내 하나로 닿는다.
우리가 사랑한 풍경은 오늘을 비추는 어제의 빛이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는 무엇을 ‘풍경’이라고 느끼고 기억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북은행미술관 개관전은 군산이라는 근대 도시와 함께하며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군산은 1899년 개항 이후 1905년 축항 공사를 거치며 항만이 형성되고, 1912년 군산선 개통과 1920년대 산업·물류 확장 속에서 빠르게 도시의 윤곽을 바꾸며 근대의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그 변화의 흔적은 골목과 건물, 길목마다 오래 남아 있으며, 지금도 도시의 표정 곳곳에서 조용히 되살아난다. 격동의 근대를 지나온 풍경을 따라가며, 사라지는 것과 남겨지는 것 사이에 놓인 의미를 다시 묻고자 한다. 화면 위에 겹쳐진 산과 길, 빛과 골목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기억을 조용히 불러낸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산은 늘 우리 안의 중심을 붙잡아 주었고, 길은 그 위를 지나온 삶이 스며들어 남은 기억의 자국으로 남는다. 그래서 풍경은 단지 자연의 겉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변화 앞에서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리움과 다짐 같은 것들을 조용히 새겨 두는 일이다. 익숙하던 삶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고, 도시의 표정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던 시기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바로 그 질문이 그림 속 풍경을 단지 ‘배경’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각이 머무는 자리로 바꾸어 놓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근대미술이라는 새로운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근대미술은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이전과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고, 같은 거리를 걸어도 낯선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풍경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자연이 아니라 흔들리는 세계를 받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화가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본 세계, 지키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을 담았다. 이에 근대미술의 풍경은 화려한 장면이기보다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표정에 가깝다. 누군가에게는 산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길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빛 한 줄기와 골목의 공기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북은행미술관에서 〈환기의 산, 수근의 길 – 우리가 사랑한 근대의 풍경들〉을 마주하는 일은 한 시대의 미술을 단지 ‘전시’하는 것을 넘어 도시가 품어온 시간과 감각을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 작업이 된다. 풍경이 자연의 재현을 넘어 시대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되듯 이 전시는 군산이라는 장소 위에 예술이 남긴 풍경을 포개어 놓는다.
이번 전시에 함께하는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 오지호, 유영국, 도상봉, 권옥연, 이대원, 박영선의 아홉 작가는 ‘근대의 풍경’을 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름들이다. 누군가는 산을 가장 먼 곳의 중심으로 세웠고, 누군가는 길과 골목에서 삶의 체온을 길어 올렸으며 또 누군가는 빛과 색, 구조와 리듬으로 변화하는 시대의 감각을 붙잡았다.
이때 김환기의 〈산〉(1955-1956)은 근대미술에서 ‘산’이 어떻게 시대의 감각을 붙들어 두는 중심이 되었는지를 가장 응축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김환기의 산은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형태를 간추리고 리듬과 색의 질서를 세워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축을 화면에 세운다. 산의 덩어리는 단단히 고정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변화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시선이 스스로를 재정렬하는 고요한 과정이 스며든다. 그래서 〈산〉은 먼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근대의 시간 속에서 ‘기준점’이 필요했던 마음의 정신적 좌표로 기능한다. 그리고 유영국은 이 중심을 밀도 높은 색면과 기하학적 질서로 다시 세우며, 시대의 감각을 ‘구조’로 견고하게 붙잡는 또 하나의 회화적 언어를 제시한다.
반면 박수근의 〈소금장수〉(1956)는 산의 원경이 아니라 길과 장터, 골목의 생활이며, 그곳에서 근대의 시간은 생존으로 드러난다. 소금은 하루를 이어주는 최소한의 삶의 경제였고, 인물의 잠깐 멈춘 몸짓은 전후 도시가 품은 피로와 버팀을 고스란히 남긴다. 거칠게 쌓인 질감과 절제된 색조는 먼지와 체온, 침묵 같은 감각을 화면에 새겨 넣으며 도시의 기억을 촉각적으로 환기한다. 여기에 오지호의 〈설경〉은 박수근이 길 위에서 포착한 삶의 기운을 다른 감각으로 이어받아, 일상의 감각이 빛과 공기의 떨림으로도 새겨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김환기의 산이 시대를 지탱하는 중심이라면, 박수근의 길은 그 중심을 현실에서 버텨낸 사람들의 시간이며, 오지호가 붙잡은 빛은 그 사이를 투명하게 잇는다. 또한 유영국이 세운 구조의 질서는 이 균형을 화면 속에서 더욱 단단히 지탱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장욱진의 세계가 놓인다.
장욱진의 〈무제〉(1958)는 산과 길이 만들어내는 무게를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들어 올리며 근대의 풍경을 다시 정의한다. 그는 사건을 묘사하기보다 집과 나무 같은 최소한의 기호로 삶의 구조를 재배치하며, 근대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일상의 원형을 보여준다. 더 시간이 흐른 뒤의 〈새〉(1988)는 그 질서가 풍경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삶의 바깥을 향해 열리는 순간을 암시한다. 떠남과 이동을 품은 새는 동시에 돌아올 수 있는 방향감각을 지닌 존재이며, 장욱진의 화면에서 그것은 ‘지금 여기’의 삶이 어떤 기억을 등에 지고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김환기의 산이 중심을 세우고 박수근의 길이 체온을 기록한다면, 장욱진의 세계는 그 사이를 잇는 단순함의 윤리와 작은 존재들의 자유로 근대 풍경의 의미를 더욱 깊게 확장한다.
이번 전시에 담긴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를 통과한다. 체험과 사유 사이를 오가며, 근대미술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한층 깊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들이 남긴 풍경은 ‘자연을 아름답게 그린 결과’가 아니라 격변 속에서도 끝내 붙잡고자 했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그 산은 멀리 있는 풍경이면서 동시에 우리 안에 자리한 중심이고, 지나간 시대의 표정이면서도 오늘의 감각을 다시 세우는 기준점이다. 전시 속 풍경을 마주하는 일은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가 남긴 시간의 흔적을 다시 읽는 일이자 우리가 어디에 서 있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전북은행미술관은 이번 개관전을 출발점으로, 근대미술을 과거의 양식으로만 보관하지 않고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내고자 한다. 격변의 시간을 통과한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되, 이를 군산과 전북의 도시 기억 그리고 삶의 풍경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며 지역의 시간과 예술의 시선이 만나는 장을 넓혀갈 것이다. 나아가 흩어진 근대의 흔적들을 차곡차곡 모아 지역의 근대를 새롭게 읽어내는 미술관이 되고자 한다. 예술이 남긴 풍경과 도시가 간직한 풍경을 한 지점에 포개어 놓음으로써 근대를 과거로 고정하지 않고 오늘의 질문으로 되살린다. 군산이라는 장소가 품은 시간성 위에서 근대미술은 다시 한 번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을 현재형으로 새롭게 묻는다. 우리가 사랑해 온 풍경이 어떻게 기억이 되는지 마침내 하나로 닿는다.






